스페인 성지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 이야기 2

2026. 1. 8. 11:22스페인 성지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 이야기

반갑습니다. 여러분, 필자는 여러분 모두의 브라더 문도라더입니다.
오늘부터 우리 브라더들과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이었던 2016년,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한 친구와 함께 걸었던 스페인 성지순례길의 여정입니다.

전문 글쓴이나 전문 구보인이 아닌 점을 미리 양해해 주시길 바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장장 800km에 달하는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파리 → 생장

첫 번째 이야기를 블로그에 털어내고 나서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의 시기가 현시점으로부터 무려 약 10년 정도 지났지만, 이제서야 털어내지는 걸 보아하니 나라는 존재는 그 시절의 연장선에 살았던 것 같다. 블로그에 글을 남기며 그 시절을 털어낸다고 생각하니 괜시리 울먹해지기도 한다.

내용으로 돌아와, 거대한 건축물 앞에서 인간의 하찮음을 느껴본 파리의 경험을 다음으로 본격적인 순례길 여정이 시작된다. 정확하진 않지만 날짜로는 2016년 12월 28일쯤이었다. 순례길 여정의 첫 시작이었던 파리를 뒤로하고, 순례길 코스를 시작하기 위해 유명한 시작 마을 생장으로 이동한다.

떼베제를 타고 파리에서 생장까지 총 6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중간 환승 지점인 바욘에 대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버스를 찾느라 사람들을 따라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저찌 생장에 도착하고 본 도시는 작았다. 그리고 시골 같았다. 건물보다는 나무가, 도로보다는 갈대잎의 갈색이 기억에 남는다.

도시는 살짝 차가웠고, 골목길 건물 사이사이에는 크리스마스인지 신년인지를 축하하는 조명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파리는 낯설었지만 생장은 낯설지만 익숙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시점은 어둑해질 무렵이었고, 겨울이라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다. 도시는 조용했고, 낯선 이를 반긴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렇지만 익숙한 느낌이었다.

도시를 한 바퀴 탐색하고 숙소를 찾아 나섰다. 어디서 잤는지, 어떤 저녁을 먹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고기를 먹었던 것 같다. 카페테리아에서 5유로짜리 햄버거를 먹었고, 이때부터 주식이 햄버거가 된 것 같다. 도착한 날인지 다음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생장에서 하루 머문 것 같다. 순례자 오피스가 다음 날 열었기 때문이다.

순례자 여권을 발부해 주는 오피스에는 사람이 좀 있었다. 아, 지금 기억난 것 같은데 여권 오피스 근처의 알베르게에서 하루 머물렀다.

다음 날 우리는 순례자 여권을 발부받고 순례길 여정을 시작했다. 순례길 코스와 걷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시작 위치 혹은 순례길 코스라는 곳의 어느 지점에서든 바닥의 조개 모양 노란색 화살표를 보고 따라가면 된다. 어느 곳이든 조개 모양과 함께 있는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도착한다고 배웠다.

노란색 화살표는 거창하지 않다. 지워진 부분도 있고, 덜 그린 부분도 있고, 누가 장난으로 따라 그린 것도 있고, 마케팅용 화살표도 있고, 조개 모양이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어떤 것이든 당신이 순례길을 걷는 동안의 이정표이니 당황하지 말고, 진짜 화살표를 찾아가는 것도 재미다. 순탄하지 않을수록 재미있을 확률이 클 수도 있다.



생장 → 론세스바이예스

생장에서 노란색 이정표를 따라 순례자 여권 오피스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첫 걸음을 시작했다. 코스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이예스로 가는 길이었다. 겨울철이라 피레네 산맥을 넘는 루트 중 나폴레옹 코스가 아닌 다른 길로 시작했다. 나폴레옹 코스보다 완만한 산길이라던데, 내 느낌은 그냥 산이었다. 뒷산 정도 되는 높낮이였지만 생각보다 긴 코스 길이었다.

길을 걷는 중 산길에는 끊긴 나무다리도 있었고, 화살표가 없는 길도 있었고, 사람도 우리 둘밖에 없었다. 걸을수록 점점 어둑어둑해졌다. 아마 혼자 걸었다면 많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친구와 함께라 두렵지 않았다.

순례길 코스 첫날, 결의에 찬 걸음걸이는 힘들었지만 해낼 수 있다는 강한 에너지에 차 있었다. 어떤 역경이든 다 해내겠다는 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이예스의 큰 수도원에 도착했다. 산길을 내려오니 그 중턱인지 애매한 위치에 수도원이 있었고, 큰 강아지가 마중 나왔다.

도착한 뒤 첫 도장을 받고, 그 수도원의 알베르게에서 하루 묵었다. 그곳에 가니 우리와 같은 처지의, 같은 걸음을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인들도 몇 명 있었던 것 같다. 그들과 간단한 식사를 같이 한 뒤 도미토리 침대에서 잠을 잤다.

첫 약 25km를 걸어본 소감은 힘들긴 했지만 걸을 만했다.
다음 날은 더 걷자였다.

그렇게 우리는 론세스바이예스에서 중간 도시를 건너뛰고 팜플로냐로, 하루 40km를 걸어 큰 도시의 1월 1일을 맞이하러 간다. 큰 도시라는 개념이 나오는 걸 보니, 산에서 본 론세스바이예스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작은 도시, 시골이었나 보다.